news: 2009. 1.03

서버업데이트 이후 아직 사이트가 불안정합니다.

+ 아직도 dumb project: vol. 01 개인전 업데이트 중입니다.
전시는 http://www.seomituus.com/new_gallery/ex_show.html?exhibition_no=47

+ 예전 작업은 현재 1/3 정도만 올려져 있습니다.

09/01/02
NEWS
permalink

문형민 dumb project: vol. 01: 월간미술 Artist Review

월간미술: Artist Review (2009년 1월호)

말과 말 사이에 놓인 ‘dumb’

<문형민: dumb project: vol. 01>전 서미앤투스

이대범 (미술평론가)



주변인물이 소중히 여기는 사물을 무채색 바탕에서 촬영하고 규격화된 그리드에 정렬한 <9 Objects>(2002)는 그 사물에 내재된 소장자의 취향을 지운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Unknown City>(2004)는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든 문자를 지움으로 도시를 익명의 공간으로 만든다. <Lost in Supermarket>(2005)는 엽기적인 광고 혹은 대형 사건 기사가 실린 신문 기사를 지울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흔적도 화려한 색상의 모노톤으로 뒤덮는다. 이렇듯 문형민은 그간의 작업에서 대상의 발화를 ‘지움’으로 미학적 정당성을 구축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문형민은 그 빈자리를 자신의 목소리로 채우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묵묵히 대상을 지운다. 다른 대상도 지운다. 또 다른 대상도 지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목소리도 지워버렸다.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려 하지만, 그는 이미 벙어리(dumb)가 되었다.



dumb
a. 벙어리의, 말을 하지 못하는(않는), 말로는 나타 낼 수 없는
v. 침묵시키다, 침묵하다,
n. 바보, 어처구니없는 실수, 멍청이.

말과 말 사이에는 선험적으로 의사소통의 부재가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이 부재의 순간을 무시하거나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명확하게 인지한다고 여기는 말과 말을 통해 완벽한(?) 의사소통을 한다. 그렇지만 완벽한 의사소통이란 애초에 불가능 한 것이며, 단지 유사(類似)한 체계에 대해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세계’를 ‘가능의 세계’로 보이게 하는 허위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그것을 반성적으로 재고하는 것은 중요하다. 문형민의 <dumb project: vol. 01>는 그간 가려져 있어서 인지하지 못했던 말과 말의 사이 공간을 재고(再考)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이전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텍스트를 지우거나, 텍스트를 숨기거나, 텍스트를 다른 매체로 대체하거나, 텍스트에서 다른 텍스트로 전환시킨다. 즉, 문형민은 말과 말 사이의 새로운 언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우리가 사용했던)말과 말을 숨기거나 전환시켜 그 사이 공간을 지시하게 한다.



정제된 화면에 내재된 허구성

전시장 초입부터 상징적인 아이콘이 말끔하게 정제된 모습으로 놓여 있다(<love me two times>). 높은 좌대 위에 놓여 있기에 관객은 그것을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그리고 강렬한 빛을 한 몸에 받아 더욱 찬란하게 보이는 미키마우스는 이미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마저도 정형화된 캐릭터이다. 그러기에 미키마우스는 형태뿐만 아니라 의미마저도 확고부동한 캐릭터이지만, 문형민은 이를 해체한다. 시간의 변화에 상관없이 굳건해 보였던 미키마우스의 표면에 그 무언가가 흘러내리면서 그것의 정형성은 해체된다. 문형민이 설탕과 밀랍으로 제작한 미키마우스는 본래 단단한 구조를 가질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미키마우스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그에게 가해진 빛과 누군가가 봐 주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오히려 그의 죽음을 촉진시킨다. 그가 죽음에 다다를수록 달콤한 향기는 더욱 진하게 전시장을 가득 채우지만, 형태는 흉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도 미키마우스는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유유히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 그렇다면 죽음(해체)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상징성은 단순한 차원(미국 자본주의 문화)을 넘어서 이번 전시 자체를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바로 정제되고, 단단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무엇(예술일 수도 있고, 언어 일수도 있는)의 허구성이다. 

긴 제목을 통해 작품의 연역을 알 수 있는 <400만원의 제작비를 들어 런던에서의 1회 전시 후 700만원의 운송비를 들여 정식 반입하였으나 보관과 판매의 문제로 파손된 작품으로 만든 개집>은 본래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는 상징성이 ‘개집’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이 ‘개집’이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보관과 판매’의 문제 때문이다. 400만원을 들여 제작하고, 전시도 한 그것이 ‘보관과 판매’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폐기처분 되어야 하는 것이 예술작품의 운명이다. 그러나 ‘작품’이 ‘개집’이 되었다는 사실은 표면적 이야기이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개집’ 역시 또 다른 작품으로서 전시장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개집’일까? ‘작품’일까? 작가가 ‘개집’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작품’이다. 물론 문형민이 상당한 돈과 시간을 들여 제작한 작품으로 만들었기에 작가 스스로 이러한 행동을 헛짓(dumb)으로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비싼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정작 헛짓은 그것을 ‘새로운 작품’이 아닌 ‘진짜 개집’으로 보고 있는 관객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관객이 ‘새로운 작품’을 ‘개집’으로 규정하게 된 이유는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긴 제목 때문이다. ‘작품’에 붙는 수사는 그것이 지금까지 지나온 긴 시간과 상당한 돈을 보여준다. 그러나 ‘개집’은 아무런 수사 없이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제목의 구조는 ‘작품’과 ‘개집’을 대립적인 의미로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관객들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작품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제목이 지시하고 있는(작가가 말하고 있는) 연원에 중심을 둔다. 

같은 맥락에서 <행동의 순수성: 45kg>과 <highway star>, <liike hell>과 <by NUMBERS Series: 미술잡지 A: 2001~2008>이 있다. 먼저, 분홍색 형광 바탕에 녹색 형광의 글씨로 ‘행동의 순수성: 45kg’이라고 적은 <행동의 순수성: 45kg>은 화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텍스트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화면 가득한 형광색은 시선의 접촉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이 메모가 어느 날, 왜, 어떻게, 어떤 의미에서 남기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관객은 눈부신 색에 놓여 있는 정체모를 메모를 통해 작가의 창작행위를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highway star>, <liike hell>은 팝송 가사를 한국인이 한글로 옮기고, 그것을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 다시 영어로 옮기고, 그것을 작가가 다시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 한국인/외국인/작가의 세 지점을 지나면서 하나의 텍스트는 원본 텍스트, 한국인이 만든 텍스트, 외국인이 만든 텍스트, 작가가 만든 텍스트로 분할된다. 이 지점에서 이들은 상호 이해(소통)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결과물은 말과 말 사이에서 생긴 왜곡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소통의 문제이다. 매월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야하는 잡지를 추적한 <by NUMBERS Series: 미술잡지 A: 2001~2008>는 매년 9월호 미술잡지 기사에서 추출한 10개의 단어에 색상을 지정하여 격자무늬로 평면작업을 한 것이다. 작업의 표면은 화려한 색상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정작 그것은 10개의 색의 조하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것은 화려해 보이는 미술이라는 것이 몇 개의 상투적인 단어로 규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할 말이 너무 많은 ‘dumb’

그렇다면 문형민은 이것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그는 ‘dumb’을 규범화된 언어를 통해 정제된 모습으로 보여주면서 표면에서는 숨기고 있으나, 그것은 정제된 화면에 함몰되지 않는다. 정형적인 캐릭터인 미키마우스(그러나 흉물로 변하는), 작품을 연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 제목(그러나 이 때문에 새로운 작품을 개집으로 보게 하는), 팝송 가사를 옮겨놓은 캔버스(그러나 문법도 맞지 않고, 가사 전달도 되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그러나 작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화려한 격자무늬(그러나 상투적인 어휘의 집합) 등으로 말이다. 이렇듯 문형민은 <dumb project: vol. 01>에서 끊임없이 그러나 두드러지지 않게 규격화되고 정제된 모습을 의심하며 해체하고 있다. 색맹테스트 그림에 숨겨진 ‘dumb’처럼 말이다. 화면의 색상과 그것들이 만들어 놓은 조형적 형태의 표면에 집중 혹은 근접해서 본다면 보이지 않겠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말끔하고 안전해 보이는 전체를 조망해 본다면 그곳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dumb’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형민은 이 세상에 놓인 수많은 ‘dumb’를 목격했던 것이고, 이 모습에서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다. 이것은 그가 벙어리이거나, 바보이거나 말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말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가 제시한 ‘dumb’을 조망하면서 그가 입을 떼서 발언 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dumb project: vol. 01 아트인컬쳐 전시리뷰

아트인컬쳐: 전시리뷰 (2008년 12월호)

문형민展 서미앤투스갤러리

김정연 (갤러리현대 실장)

문형민의 개인전 <dumb project: vol. 01>에 소개된 회화작품 <행동의 순수성>에 얽힌 일화을 작가의 설명에 기초하여 재구성해 보자면 어느 날 컴퓨터 모니터 앞에 붙여놓았던 짧은 메모가 작가의 눈에 들어 왔다. 언제부터인가 그곳에 있었지만 딱히 언제였는지, 왜 그런 메모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행동의 순수성: 45KG’. 분명 작가 자신이 남긴 메모이고 모니터에 붙여놓기까지 했건만 도통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작품의 제목이자 중심 이미지이기도 한 몇 개의 나열된 단어들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작가의 인식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작가 본인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이 짧은 메모의 의미를 관람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심지어 형광색 분홍 배경 위에 파란 형간색으로 적힌 문자들은 시각적 접근까지 방해한다. 눈이 부셔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는 이 작품은 의미의 파악은 커녕 시각적 침투마저 제지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예술의 소통 가능성을 믿고 소통의 장치를 고민하는 작가의 창작 행위나, 작품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관람객의 안일한 기대 등과 같은 일련의 소통지향적인 행위들을 단번에 ‘dumb’한 짓, 소위 바보 같은 짓으로 단정해 버린 듯하다.

예술에 있어서 소통의 문제는 오래되고 진부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의 존재 가치를 규정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작가나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소통가능성에 대한 문제에 있어 작가와 관람객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게 설정된다. 소통이란 단순히 작가가 의미를 발신하고 관람자가 그것을 수신하는 일방향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한 소통, 혹은 창작자의 의도가 무실해지는 소통이 발생하기 마련이며 그 의미는 수신자의 주관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문형민은 이번 전시에서 소통의 문제점, 혹은 소통의 어려움을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심지어 세련되고 예쁘게 장식하는 그의 특기를 최대한으로 발휘하였다. 가령 <by numbers Project: 미술잡지 A>는 미술잡지에 높은 빈도로 사용된 10개의 용어에 각기 다른 색을 부여하고, 용어의 빈도수에 따라 각 색이 차지하는 비율를 달리하여 배열한 격자무늬 평면작업이다. 일견 매우 장식적이지만 동시에 매년 미술계의 화두가 꾸준히 변해왔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이를 비롯하여 작가가 제시하는 정치적 사회적 또는 미술계의 다양한 이슈들이 시각적 화려함으로 치장되고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후에는 심각함을 느슨한 여유로 풀어내어 또 다른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축면에서 전시 제목인 ‘dumb project’의 본래 의도가 무엇인지 다시 궁금해진다. ‘dumb’의 여러 사전적 의미들 가운데 문형민의 ‘dumb project’가 단순희 우둔함이나 멍청함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이번 전시는 소통을 포기한 한 예술가의 호기로 간주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그의 전시 리뷰를 쓰고 있는 이 시간과 에너지도 그의 호기에 말려든 하릴없는 짓으로 전락할 우려도 없지 않다. 그래서 문형민의 이번 전시를 ‘dumb’의 두 번째 사전적 의미, ‘말을 하지 않는, 말없는, 무언의’ 프로젝트로 설명하고 싶다. <dumb project: vol. 01>은 작가가 앞으로 이야기할 많은 숙제드을 빼곡하게 채워놓은 ‘무언의 프로젝트’이다. 말을 할 줄 몰라서 혹은 할 말이 없어서 무언이 아니라 할 말이 너무 많아 아직 소리 내지 못한 고요함으로 이해된다. 말하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그가 어떤 <dumb project: vol. 02>를 보여줄지 자못 기대된다.

dumb project: vol. 01: INSTALLATION VIEWS

1F:

love me two times 2008
Paraffin, Sugar, Rotating Columm
150 x 150 x 420 cm

+
2F:

道不拾遺紀念, 1989 2008
enamel paint on engraved brass
120 x 120 x 4 cm

dumb project: people series #03 2008 (left)
painting on wooden puzzle
150 x 150 x 8 cm

+
3F + 4F:

+
4F:


love me two times + you’re my sunshine


installation view: ‘dumb project: vol. 01’, seomi&tuus, 2008

love me two times 2008
Paraffin, Sugar, Rotating Columm
150 x 150 x 420 cm

+
you’re my sunshine 2008
LED Lighting System
30 x 450 x 20 cm


+ click pix!

+
http://www.twozeroeight.net/tze319/index.php/hyungmin_k/2_sketches_for_love_me_two_times_k/

dumb

dumb 2008
painting on canvas
60 x 60 inches (150 x 150 cm)

+ click pix!


道不拾遺紀念, 1989

道不拾遺紀念, 1989 2008
enamel paint on engraved brass
120 x 120 x 4 cm

+ click pix!

행동의 순수성

행동의 순수성 2008
painting on wooden box
60 x 60 x 3 inches (150 x 150 x 8 cm)

+ click pix!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 2008
painting on canvas
150 x 200 cm




+

detail

recycle project: after… series #01

recycle project: after… series #01 2008
polyurethane
130 x 130 x 90 cm

Page 1 of 16 pages  1 2 3 >  Last »


© 2009: twozeroeight + hyungmin moon